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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화가의 생애와 대표작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술관이나 인터넷 등에서 생애나 작품에 대해 알아볼 수 있지만 너무 중구난방으로 되어 있어 직접 찾아보고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조사하면서 알게된 사항들을 시간이 지나서도 기억하기 위해 작성해보았습니다.

 

1. 이중섭 화가의 생애

 

 이중섭 화가의 생애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중섭 화가는 20세기 대한민국 근현대미술 대표 화가로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적인 미를 추구하였습니다. 이는 스승 임용련의 조선 사람은 조선 화풍으로 그려야 한다는 가르침이 크게 반영되었다고 합니다. 이중섭 화가는 부유한 가정 환경 속에서 태어나 궁핍한 환경 속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1936년에 도쿄 제국미술학교 서양학과에 진학하였고 1939년 같은 학교 후배인 배우자 야마모토 마사코와 교제를 시작하였고 45년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배우자의 한국 이름을 이남덕으로 작명을 해주었는데 배우자한테 너무 촌스러운 이름을 지어준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뜻을 찾아보니 남쪽에서 온 덕이 많은 여인이라는 뜻이어서 아 이름을 잘 지었구나? 다 의미가 있었구나 라고 생각을 하며 짧게 반성을 했습니다.“ 대학교 시절 이중섭 화가는 조선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잘 생기고, 운동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그림까지 잘 그려서 인기스타였다고 합니다.

 결혼을 한 후 1946년에 첫 아들을 출생하였으나 디프테리아로 사망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원산에서 계속 거주하다 625전쟁이 발발하였고 195012월 흥남 철수 작전 때 남한으로 피난하였습니다. 흥남 철수 작전 때 원산에 남은 노모에게 작품 대부분을 맡기고 와서 작품의 절반 이상은 구할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남한으로 피난 온 이후부터 경제적인 여건이 어려웠고 그로 인해 정착을 하지 못하고 떠돌다 1952년 아내와 아이들은 일본으로 가고 이중섭 혼자서 한국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막노동을 하면서도 가족과의 재회를 위해 엄청난 그림을 만들다 건강이 악화되었고 결국 1956년 황달, 정신병, 거식증 등으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친구들이 며칠 전에 죽은 이중섭의 시체가 침대 위에 쓸쓸하게 방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고 죽은 그의 곁에는 병원비 독촉장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이중섭 화가의 생애에서 일제강점기라는 사회적 배경, 첫 아들의 죽음, 625전쟁, 가족과의 이별은 이중섭 화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을 대표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이중섭 화가의 대표작품

 이중섭 화가의 대표작품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일부 작품만 선정해보았습니다. 

 1) 흰 소

『흰소』(1955) / 30x41.7cm / 홍익대학교 박물관

 

 이중섭은 들판의 소를 자세히 관찰하다가 소 도둑으로 몰렸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을 정도로 소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중섭의 소 작품은 공통적으로 민족의 상징물을 의미합니다. 그 중 흰소 작품은 한국인의 삶과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한국의 토종 소인 황소를 흰색의 소로 표현한 것에서 백의민족인 한민족의 모습을 반영한 민족적 표상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작가의 모습과 내면을 보여주는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몇 개의 획으로만 구성된 형태의 표현은 힘이 넘치고 우직한 화면을 보여주는데, 이는 끊임없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 투쟁하는 자신의 모습과 내면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흰소 작품을 살펴보면 멈춰 있지만 움직이는 것 같고 입과 코가 벌름거리면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생동감이 있습니다. 흰색으로 표현한 굵은 골격과 근육에서 강렬함이 전해지지만 악의가 없는 온순함과 우직함이 보입니다. 요동치는 듯한 거친 붓질로 소에 생명력을 불어넣자 소는 강한 파장을 일으키며 돌진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6 25전 전쟁에 대한 우리 민족의 분노를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2) 황소

『황소』(1953) / 35.3x52cm / 서울 미술관 소장

 

 두 번째 작품은 황소입니다. 어느 한 프로그램에서 일제강점기는 살아가기보다는 살아내야 했고 이루어가기보다는 견뎌내야 했던 시기라고 표현을 했는데요. 이중섭 작가는 일제강점기라는 비극의 시대를 견뎌낸 우리 민족을 역경을 딛고 전진하는 소에 민족의 정체성을 투영하여 황소 그림을 그렸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황소 작품을 살펴보면 먼저 소 한 마리가 묵직한 다리를 움직여 느린 걸음으로 화면 왼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발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땅을 내디디려는 순간, 고개를 돌려 관객을 쳐다보는 것으로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살이 없이 비쩍말라 골격을 다 드러냈지만, 육중한 동작으로 강렬한 에너지의 발산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깨를 치켜 올리고 뿔을 치받으려는 소의 자세는 어떠한 역경도 극복할 수 있다는 단호한 의지와 결단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3)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1950년대 초)  / 32.8x20.3cm /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중섭은 흔히 소의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소재 면에서 보면 어린아이의 화가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또한 소보다 어린아이를 소재로 한 그림이 더 많다고 합니다. 1946년 이중섭의 첫 아이가 병으로 사망한 이후에 군동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하였고 이는 죽은 아들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군동화는 모여있는 아이들의 그림을 말합니다. 작품을 살펴보면 농밀한 색채와 간결한 데생 그리고 담채의 기법을 통하여 해맑고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를 가감없이 그려낸 작품입니다. 1951년 제주도 피란 생활 중 바닷가에서 딴 해초와 게를 주식으로 삼았던 시절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으로 알려져있습니다.

 

4) 은지화

『게와 물고기와 새와 아이들』

 

 은지화는 광택이 나는 알루미늄 속지에 철필이나 못 등으로 윤곽선을 눌러 그린 다음, 그 위에 물감이나 먹물을 문질러서 완성합니다. 은박지의 광택과 음각선에 묻혀 들어간 짙은 선으로 인해 도자기의 상감기법을 연상시키도 합니다. 이중섭의 궁핍한 환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었던 그림을 향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방이나, 술집, 길바닥과 쓰레기통에서 담뱃갑을 주워 그 안에 든 은박지를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접히고, 구겨지고 찢어져 있던 종이들을 그대로 살려둠으로써 화면의 우연성을 더욱 강조하였습니다.

 

 

 이상으로 이중섭 화가의 생애와 대표작품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건희 전 삼성회장이 모은 미술작품 컬렉션 중에 이중섭 화가의 그림이 있었고 미술관에서 관람전도 진행될 때가 있으니 한번 방문해서 감상하고 싶기도 합니다.